
애인 - 정한아
한밤을 펜과 씨름하다
책상에 엎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책상의 이데아도 질료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
책상의 나직한 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속에 세월을 묻고 가슴에 열쇠를 꽂은
숨소리가 나직한 늙은 책상은
내가 사춘기에 칼로 그은 상처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해준 책상
나를 잠재눠준 책상
내가 후려갈기고 긋고 할퀴고 물어뜯고 종국에
머리를 박아대던 책상,
책상은 나를
제 다리 밑에 숨겨줍니다
거기서 손가락 빨며 눈 빨개지도록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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