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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찔레꽃 - 송기원​

by 해선 잠보 2023. 6. 15.

찔레꽃 -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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