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국수/철원에서 보내는 편지 - 박준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
저녁밥을 안치는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습니다
동송으로 가면 삼십 년 된 막국숫집이 있고 갈말로 가면 육십 년 된 막국숫집이 있는데
저는 이 시차를 생각하며 혼자 즐거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말한 제 아버지는 사십 년 동안 술을 드셨고 저는 이십 년 동안 마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문밖으로 나와 연신 부채질을 하던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에게 저녁을 먹었는지 물었습니다
국수를 먹었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몇 분에게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주인집 어른께는 입맛이 없어 걸렀다고 답했다가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말에 큰비가 온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은 그 전까지 배추 파종을 마칠 것입니다
겨울이면 그 흰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고요
그때까지 제가 이곳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먼 시간을 헤아리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 저는 입을 조금 벌리고 턱을 길게 밀고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더 오래여도 좋다는 듯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