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글

시월(十月) - 황동규

by 해선 잠보 2021. 6. 29.

시월(十月) -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 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4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丹靑) 밖으로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 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하는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