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그림자 - 윤동주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골물 - 윤동주 (0) | 2021.06.29 |
|---|---|
| 소년(少年) - 윤동주 (0) | 2021.06.29 |
| 장미 병들어 - 윤동주 (0) | 2021.06.29 |
| 10월의 편지 - 목필균 (0) | 2021.06.29 |
| 10월에 꿈꾸는 사랑 - 이채 (0) | 202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