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초 - 이규봉
어머니 묘에 벌초를 하다
한낮의 불볕을 피해, 밤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푸른하늘에 업혀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다가
새들이 조잘되는 노래를 듣다가
정호승 시인의 시집 `포옹' 을 한손에 펼쳐든다
.......................................`허물, 을 읽는데
고추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책 끝에 앉는다
꽃대가 꽃을 받치듯 내 손이 `매미의 허물, 과 잠자릴 받친다
손이 움직이면 잠시 날았다 다시 와 앉는 잠자리
어제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의 잠자리채에 걸렷던 잠자리
우리아기와 놀다 날개에 자유를 실어준 그 잠자리
그 고추잠자리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줄 알았다
`허물' 의 종반부를 읽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있는 까닭은/ 아이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나는 감전된 듯 온몸이 저려온다
어머니의 혼령이 잠자리 날개를 타고 찾아온 것이다
잠자리와 나 사이에 침목의 강물이 흐른다
잠자리 날개의 고요한 떨림
나는 어머니가 하고 싶어 하시는 말을 알아차린다
한 동안 내 곁을 떠 날줄 모르던 잠자리
한번 크게 날자
내가 벌초를 끝내도록 다시 찾아 오지 않는다
이승과 저승의 먼 거리, 상석 앞에서 두 번 절한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을사랑 - 도종환 (0) | 2021.07.07 |
|---|---|
| 고향 - 정지용 (0) | 2021.07.07 |
| 세월이 가면 - 박인환 (0) | 2021.07.07 |
| 님의 침묵 - 한용운 (0) | 2021.07.07 |
| 코스모스 - 전봉건 (0) | 2021.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