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病院)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뒷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않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본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태초의 아침 - 윤동주 (0) | 2021.07.14 |
|---|---|
| 또 태초(太初)의 아침 - 윤동주 (0) | 2021.07.14 |
| 이별(離別) - 윤동주 (0) | 2021.07.14 |
| 서시(序詩) - 윤동 (0) | 2021.07.13 |
| 쉽게 씌어진 시(詩) - 윤동주 (0) | 2021.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