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글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by 해선 잠보 2021. 7. 22.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 잎 몇 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밥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 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은 내게 - 신경림  (0) 2021.07.22
수묵(水墨) 정원 9ㅡ번짐​​ - 장석남  (0) 2021.07.22
기도일기 - 이해인  (0) 2021.07.22
좋은 기쁜 날 ​​​- 이시영  (0) 2021.07.22
너에게 쓴다 ​​- 천양희  (0)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