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글

사랑의 역사 - 이병률

by 해선 잠보 2021. 9. 3.

 

사랑의 역사 -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친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