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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희망 - 김규동

by 해선 잠보 2021. 9. 13.

 

희망 - 김규동 

일정 때

두만강변 회령경찰서 취조실에서 흘러나오던

그 사나이의 비명은

어째서 아직도 내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는지

6·25 때

한강을 헤엄쳐 건너온

백골부대의 한 병사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던 일은

어째서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지

지난날

38선을 넘을 때

안내꾼에게 준 할아버지의 회중시계는

아직도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지

해체된 풍경 속에

잃어버린 것은

스승과 눈물과 후회뿐인 줄 알았더니

추락하여 가는 내면의 눈에

번개같이 스치는 것은

깨끗한 한 개의 희망이다

스산한 나뭇가지에

빛의 다른 한쪽이 머무는 것을 보고

무서운 경이(驚異)를 느낀다

그것은 내일을 향한 순간의 전율

푸른 공간의 전락(轉落)을 뒤로

부서져 내리는 차가운 유리조각

오 희망을 위하여는

처참한 것을 넘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