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 김규동
일정 때
두만강변 회령경찰서 취조실에서 흘러나오던
그 사나이의 비명은
어째서 아직도 내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는지
6·25 때
한강을 헤엄쳐 건너온
백골부대의 한 병사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던 일은
어째서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지
지난날
38선을 넘을 때
안내꾼에게 준 할아버지의 회중시계는
아직도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지
해체된 풍경 속에
잃어버린 것은
스승과 눈물과 후회뿐인 줄 알았더니
추락하여 가는 내면의 눈에
번개같이 스치는 것은
깨끗한 한 개의 희망이다
스산한 나뭇가지에
빛의 다른 한쪽이 머무는 것을 보고
무서운 경이(驚異)를 느낀다
그것은 내일을 향한 순간의 전율
푸른 공간의 전락(轉落)을 뒤로
부서져 내리는 차가운 유리조각
오 희망을 위하여는
처참한 것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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