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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가을 서한 - 나태주​

by 해선 잠보 2024. 9. 13.

가을 서한 - 나태주

1

끝내 빈 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2

새로 국화잎새 따다 수놓아

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

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저승의 햇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겨울양식.

3

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내려오는 등성이에서

돌아보니 타닥타닥 영그는 가을꽃씨 몇 옴큼,

바람 속에 흩어지는 산 너머 기적소리,

4

가을은 가고

남은 건

바바리코우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

때묻은 와이셔츠 깃

가을은 가고

남은 건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내 휘파람 소리

첫눈 내리는 날에

켜질

그대 창문의 등불 빛

한 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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