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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 길상호

by 해선 잠보 2024. 11. 26.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 길상호

 

베어 묶어 둔 빗줄기가

뒷마당에 다발로 쌓여 있었다

금낭화는

네 개의 유골단지를 쪼르르 들고

꽃가지가 휘었다

뒷산에서 잠시 내려온

아버지와 큰형과 둘째형과 똥개 메리는

대화를 나눌 입이 없고

서로를 무심히 통과하면서

물웅덩이마다 둥근 발자국을 그려 놓았다

헛기침에도

꽃이 떨어져 깨질까 봐,

그들의 빈 눈과 마주칠까 봐,

나는 먹구름과 함께 발뒤꿈치를 들고

그 집을 나왔다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봄이 벌써 반 이상 떨어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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