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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루저 까마귀 - 최금진​

by 해선 잠보 2024. 11. 26.

루저 까마귀 - 최금진

우리가 누군 줄 알아

도둑도 거지도 아닌

졸지에 까마귀가 되어버린 심정이 어떤 줄 알아

무엇이든 움켜쥐고 싶었으나 다 놓치고

그저 아침부터 재수 없이 짖어대는

세상 잡것이 된 사연

우리는 거리에서 날아온 시커먼 부고장

썩은 고기 냄새

마귀, 까마귀

까옥 까옥, 지옥을 응시하는 기분으로

겨울 추위 속에 앉아 몸을 웅크릴 때마다

살아있으나 죄짓는 기분이 어떤 줄 알아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 가도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는

시청 주변 상가로 모여드는

떨거지들, 행려병자들, 패배자들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우리는 하늘과 땅을 떠도는 도둑과 거지의 신

멋과 낭만이 흐르는 세상 어디에서나

카악 퉤, 재수가 없는

마귀,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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