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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전어 - 김신용

by 해선 잠보 2024. 11. 25.

전어 - 김신용

참, 동전 짤랑이는 것 같기도 했겠다

한때, 짚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구워지던 것

비늘째 소금 뿌려 연탄불 위에서도 익어가던 것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이면 錢魚라니―​

손바닥만 한 게 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일렁이는 동전을 닮아 보이기도 했겠다

통소금 뿌려 숯불 위에서 구워질 때,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그 구수한 냄새가 풍겨질 때. 우스갯소리로 스스로 위로하는

그런 수상한 맛도 나지만, 그래, 이름은 언제나 象形의 의미를 띠고 있어​​

살이 얇고 잔가시가 많아 시장에서도 푸대접 받았지만

뼈째로 썰어 고추장에 비벼 그릇째 먹기도 했지만

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냄새는,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장바닥에 나앉아 먹는 국밥 한 그릇의, 그런 감칠맛이어서

손바닥만 한 것이, 그물 가득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그래, 빈 호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는 묵직한 동전 같기도 했겠다

흔히 ‘떼돈을 번다’라는 말이, 강원도 아오라지쯤 되는 곳에서

아름드리 뗏목 엮어 번 돈의 의미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바다 속에서, 가을 벌판의 억새처럼 흔들리는 저것들을

참, 동전 반짝이는 모습처럼 비쳐 보이기도 했겠다

 

錢魚,

 

언제나 마른 나뭇잎 한 장 같던 마음속에

물고기 뼈처럼 돋아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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