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글

야간개장 동물원 - 박민서​

by 해선 잠보 2024. 12. 19.

야간개장 동물원 - 박민서

 

밤하늘엔 야생 동물들이 갇혀 있다

다시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높이 걸려 있다

먹이사슬이 없어 푸른 불꽃을 먹고

처녀 사육사가 별의 촛불을 하나씩 켜면

동물원 야간개장을 시작한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동물들

 

계절마다 우리 밖으로 튀어나온 숲

동물들이 나란히 거리 한복판을 우르르 지나간다

가로수에서 별의 열매를 따 먹는다

그 열매에서 사자와 독수리, 황소와 전갈을 낳는다

 

양 떼를 몰고 가는 유목인이 치는 별점

대륙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별자리들의 틈을 메운다

 

동물을 숭배하는 습관이 있었다

얼굴을 핥거나 밭을 갈지는 않지만 좌표 없는 우리와

달이 열두 개 떠 있는 별자리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누구도 키우지 않는 동물 한 마리

망원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별 하나에 끈을 묶고 사는 동물

서로 흩어져서 환하게 밝아오면

처녀 사육사가 듣는 사방 문 닫는 소리

야간개장 자유이용권을 목에 걸고

활활 타오르며 늙어가는 사파리에 간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중턱에서 - 오정방​​  (0) 2024.12.20
마릴린 목련 - 정두섭  (0) 2024.12.20
풀을 뽑으며 - 임보​  (0) 2024.12.19
12월 - 반기룡  (0) 2024.12.18
옹이로 살아가는 법 - 오영록  (0)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