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중년 그리고 미련/김설하
언제부터 그랬는지 한쪽 가슴이 시려 온 뒤로
해거름 꽃길에서 막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름 모를 풀꽃처럼 시들기 시작했을 때
어둠은 건너 산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고
초라하고 작은 여자의 가슴에도 내려서
그래 그런 것들로 삶이 잿빛 같았지
동트는 아침 창가에서 커피 물 끓고
방금 들여온 조간신문을 펼치면
꾸물꾸물 기어가는 활자가 조롱할 때
깊은 슬픔이 부려 놓은 우울 앞에서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앞을 가리는 눈물
그래 그럴 때면 외롭고 완강한 설움에 휩싸였지
한 폭의 풍경으로 걸리던 찬란한 노을빛
어둠 속으로 윤곽만 남긴 채 사라지고 나면
거대한 괴물의 형상으로 긴 동면에 들까
쓸쓸하고 담담하게 먹칠한 가슴 부여잡고
거울 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문 굳게 닫은 서글픈 여자가 있었지
갈대 흔들리는 강가에도 유수 같은 세월
낮은 담벼락에 붙어 핀 샐비어 이슬 말리고
갈꽃 무리 틈바구니에 섞여 햇볕 쬐는
언제 뽑힐지 모를 잡풀의 끈끈한 생명력처럼
꽃그늘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혼의 허기
마침내 심연 저편으로 해가 뜨는 날
한가닥 빛으로 마음의 문을 허물고픈 중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