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글

흰 그림자 - 윤동주

by 해선 잠보 2021. 7. 12.

 

흰 그림자 - 윤동주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 윤동주  (0) 2021.07.13
무얼 먹고 사나 - 윤동주  (0) 2021.07.13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0) 2021.07.12
비 오는 밤 - 윤동주  (0) 2021.07.12
산상(山上) - 윤동주  (0) 2021.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