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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by 해선 잠보 2021. 10. 1.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 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빰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 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