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다방 - 이생진
동백다방에는 여우 같은 여자와
토끼 같은 여자 둘이 차를 파는데
알고 보면 둘 다 양 같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용감하다고 해야 한다
여자의 몸으로 이런 고도에
겨울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동백나무잎보다 두꺼운 체질이다
그래도 얼굴이 배추 속 같고
다리는 무같이 희다
혹시 우리 동네에서
가출했다는 아가씨가 아닌가 했더니
여우 같은 여자는 수원서 왔고
토끼 같은 여자는 대전서 왔다 한다
둘 다 먼 데서 와서 더 양 같아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보고 양 같다고 한다
뭍에는 밤이고 낮이고 놀 데가 많은데
목포에서 사흘씩이나 기다려
바람 부는 겨울날 홍도에 왔다니
동백꽃을 보러 왔다면
미친 양 같다고 할 거다
길 잃은 양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여우 같은 여자는
여름이 가고 해가 바뀌는 겨울인데
아직 속옷은 비키니 차림이고
겉은 슬리퍼에 목걸이 대신
주먹만한 라이터
토끼 같은 여자는 양말을 벗고
흉터를 가리키며
"엊저녁에 그놈들이 내 발에
성냥불을 켜댔다"고 기절하는 표정이다
이번엔 여우 같은 여자가
난롯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담배를 꺼낸다
"아저씨 담배 좀 피울래요"
이건 체면 때문에 하는 소리고
동정이라면 뭍에서 들어온 신선도 때문에
꺼낸 말일 거다
내가 피우지 말라고 해서 안 피울 여자가 아니다
그러나 둘 다 양 같은 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머닌?
아버진?
형제는?하고 물으면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아서 말았다
길 잃은 양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여우 같은 여자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천장을 쳐다보며 연기를 뿜더니
"내년 봄에는 어디로 가지?"한다
자욱한 연기가 장님처럼 창문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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