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8/나루 - 김용택
섬진강 나루에 바람이 부누나
꽃이 피누나
나를 스쳐 간 바람은
저 건너 풀꽃들을
천 번 만 번 흔들고
이 건너 물결은 땅을 조금씩 허물어
풀뿌리를 하얗게 씻는구나
고향 산천 떠나보내던 손짓들
배 가던 저 푸른 물 깊이 아물거리고
정든 땅 바라보며
눈물 뿌려 마주 흔들던 설운 손짓들 두고
꽃길을 가던 사람들
지금 거기 바람이 부누나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뱃길
뱃전에 부서지며 갈라지던 물살을 보며
강 건너 시집간 누님도 객지로 가고
공장 간 누이들은 소식도 없다가
남편 없는 아기 엄마 되어
밤배로 몰래 찾아드는
타향 같은 고향 나루
그래도 천지간에 고향이라고
이따금 꽃상여로 오는 사람들
빈 배가 떠 있구나
기쁜 일 슬픈 일 제일 먼저
숨 가쁜 물결로 출렁이던
섬진강 나루에
지금도 물결은 출렁이며
설운 가슴 쓸어
그리움은 깊어지는데
누가 돌아와서 이 배를 저을까
오늘도 저기 저 물은 흘러, 흘러서 가는데
기다림에 지친 물결이 자누나
풀꽃이 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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