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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독(毒)을 차고 - 김영랑​

by 해선 잠보 2024. 9. 5.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안 일 없는 새로 뽑은 독(毒)

벗은 그 무서운 독(毒)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毒)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毒)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디!' 독(毒)은 차서 무엇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디!'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毒)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외로운 혼(魂)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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