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춤 - 신석초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
티없는 꽃잎으로 살어 여러 했건만
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
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
어이할까나.
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
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
경경(耿耿)히 밝은 달은
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
뒤안 이슥한 꽃가지에
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
저리 슬피 우는다.
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
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
무상한 열반(涅槃)을
나는 꿈꾸었노라.
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
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
몸은 설워라.
허물 많은 사바(娑婆)의 몸이여.
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
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
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
내 보석 수풀 속에
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
끝없는 갈림길이여.
구름으로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
지는 꽃잎도 띄워
둥둥 떠내려가것다
부서지는 주옥의 여울이여.
너울너울 흘러서
창해(滄海)에 미치기 전에야
끊일 줄이 있으리.
저절로 흘러가는 널조차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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