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이병률
이사를 한다
나도 모르는 이사를 하고
싼 적 없는 이삿짐을 푼다
언제부턴가 그리 되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이사
명치께에서 명치 끝으로의 이사
생각에서 생각으로의 이사
이상하게 그때는 항상 가을이었다
그 가을이었다
낯선 곳에다 짐을 내려놓고는
잠깐 자려고 눈을 붙였다가 떴는데
창문 바깥 해바라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놀랐다
벌써 저녁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해바라기가 잠든 나를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찾기 위해 일어나 앉아서는
조금 걸어야 한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했다
해는 없고 해바라기만 떠 있었다
마음에 파고들어와 아프게 드나드는 그 감정이 하도 쓰르르해서
나는 나를 건드려 발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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