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꽃이 피었다 - 김종제
가칠봉 기슭의 펀치볼에
선혈 같은 감자꽃이 피었다
순교자의 흰피를 보았으니
며칠 있다 저 꽃 지면
기적으로 생겨난 굵은 살점 같은
감자를 캘 수 있겠다
격전의 여름이 가기 전에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이라
목이 메이도록
눈물의 감자밥을 먹을 수 있겠다
유월의 전쟁에서
뼈도 찾지 못한 목숨들이 많아
감자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땅밑에 부둥켜 안고
함께 드러누워버린 생(生)이여
팔을 뻗어 가까스로 손 닿고
이름 부르고 간 명(命)이여
이 산하 곳곳이
폭탄 맞아 움푹 패인 감자를 닮았다
저 감자꽃이
순국의 종교가 아니라면 무었이랴
성전의 경구가 아니라면 무었이랴
주검 대신 얻은 저 핵의 알갱이
희생으로 일궈낸 저 골수
모난데 없이 둥글다
삶을 다 토해낸 인생이
감자꽃으로 피었다
흰 옷 수의로 갈아입고
관 열어 젖힌 세상을 보았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월의 시 - 김남조 (0) | 2021.08.23 |
|---|---|
| 동행 - 이향아 (0) | 2021.08.23 |
| 사랑의 되뇌임 - 브라우닝 (0) | 2021.08.23 |
| 생(生)의 감각(感覺) - 김광섭 (0) | 2021.08.23 |
| 비단강 - 나태주 (0) | 2021.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