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의 담쟁이 - 오정국
언젠가 한번쯤 전봇대에 기대어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을 불었음 직한 골목,
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예닐곱 살 계집아이의
장난감 우산 같은
잎새들, 목을 꼬고 앉아 간들거린다
경찰에게 뒤쫓기던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었음 직한
막다른 골목,
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바람결에 잎새들이 팔랑거리자
발목 붉은 새의
다리 같은 게 보였다
퇴근길의 룸살롱 여자가 흥건하게 오줌을 누고
치마를 털고 갔음 직한 골목,
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벽돌에
새의 발자국 같은 게 찍혀 있다
직장 잃고 술 마신 40대 가장의
국수면발까지 토해 내고 나서
눈물 글썽이며 쳐다보던
새벽 하늘,
그 하늘 아래
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거기, 벼랑 같은 담장을
아프게 아프게 밟아 올린
핏자국 같은 발자국이 있다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정끝별 (0) | 2023.06.04 |
---|---|
담쟁이 - 조은 (0) | 2023.06.04 |
붉은 담쟁이 - 손세실리아 (0) | 2023.06.03 |
담쟁이넝쿨 - 이은봉 (0) | 2023.06.03 |
빨간 담쟁이덩굴 - 정현종 (0) | 202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