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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입추 - 안도현

by 해선 잠보 2024. 11. 4.

입추 - 안도현

 

이 성문으로 들어가면 휘발유 냄새가 난다

성곽 외벽 다래넝쿨은 염색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나서고 있고

백일홍은 장례 치르지 못한 여치의 관 위에 기침을 해대고 있다

도라지꽃의 허리 받쳐주던 햇볕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별이다

방방곡곡 매미는 여름여름 여름을 열흘도 넘게 울었다지만

신발 한 짝 잃어버린 왜가리는 여태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한성부 남부 성저십리(城底十里)의 참혹한 소식 풀릴 기미 없다

시 두어 편 연필 깎듯 깎다가 덮고 책상을 친다

오호라, 녹슨 연못의 명경을 건져 닦으니 목하 입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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