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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기도 - 목필균​ 12월의 기도 - 목필균​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재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2024. 12. 24.
12월 - 이외수 12월 - 이외수​​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쓸쓸하라고눈이 내린다​닫혀 있는 거리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종말처럼 날이 저문다​가난한 날에는그리움도 죄가 되나니그대 더욱 목메이라고길이 막힌다​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누군가 흐느끼고 있다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지워지고 있다​ 2024. 12. 24.
송년의 시 - 윤보영 송년의 시 - 윤보영​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징검다리 아래 물처럼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2024. 12. 23.
12월은 - 하영순 12월은 - 하영순​​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한 죄인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보석에 비하랴금 쪽에 비하랴​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허전한 마음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강물처럼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 ​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 옷이나 입히자생각하면 생각할수록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서럽다! 서럽다 못해 쓰리다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 2024. 12. 23.
12월 중턱에서 - 오정방​​ 12월 중턱에서 - 오정방​​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무엇을 얻었고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누구를 사랑했고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이해할 자를 이해했고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는지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무의식중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꼭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이런 저런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는데12월의 꽃 포인세티아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2024. 12. 20.
마릴린 목련 - 정두섭 마릴린 목련 - 정두섭​애지중지 호롱불은 멋 부리다 얼어 죽고제멋대로 화톳불은 까무룩 새까매져서할마시 쪼그려 앉아 사람 볕에 손 녹일 때​힐끗힐끗 살바람이 못 참아 더는 못 참아백목련 치맛자락 들춰보고 저리 내빼네그늘도 화색이 돌아 잇몸 만개 이빨 두 개​굳이 또 찾아와서 겸상하는 다시 봄에여벌의 수저 한 짝 내어주고 오물오물낡삭은 개다리소반 무게를 덜고 있네 2024. 12. 20.
야간개장 동물원 - 박민서​ 야간개장 동물원 - 박민서​ 밤하늘엔 야생 동물들이 갇혀 있다다시는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처럼 높이 걸려 있다먹이사슬이 없어 푸른 불꽃을 먹고처녀 사육사가 별의 촛불을 하나씩 켜면동물원 야간개장을 시작한다 낮에는 잠을 자다가밤에만 나타나는 동물들 계절마다 우리 밖으로 튀어나온 숲동물들이 나란히 거리 한복판을 우르르 지나간다가로수에서 별의 열매를 따 먹는다그 열매에서 사자와 독수리, 황소와 전갈을 낳는다 양 떼를 몰고 가는 유목인이 치는 별점대륙을 손바닥에 올려놓고별자리들의 틈을 메운다 동물을 숭배하는 습관이 있었다얼굴을 핥거나 밭을 갈지는 않지만 좌표 없는 우리와달이 열두 개 떠 있는 별자리에서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지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누구도 키우지 않는 동물 한 마리망원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 2024. 12. 19.
풀을 뽑으며 - 임보​ 풀을 뽑으며 - 임보​30여 평 내 집의 뜰에서는 내가 제왕帝王이다모든 잡초들은 내 손에 의해 제거된다아니, 잡초와 화초의 판단은 내 권능의 영역이다하찮은 들풀들도 내 눈에 곱게 보이면 가꾸어지고요염한 장미도 낡아 그 꽃이 보잘 것 없으면 숙청된다너무 번창하여 그늘을 크게 드리우는거만한 놈들은 수족이 잘리고오래 응달에 살던 불행한 놈들도어느 날 문득 내 눈에 띄어하루아침에 양달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30여 평 내 조그만 영토에서의 권능도이렇게 번쩍거리거늘수만리 국토를 주름잡는 군주의 권능은얼마나 기똥찰 것인가그래서 권능의 꿀에 시력을 잃은 어리석은 자들은아마 그렇게 미쳐 있나 보다 2024. 12. 19.
12월 - 반기룡 12월 - 반기룡​​한 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달력 한 장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며칠 후면 세상 밖으로사라질 운명이기에 더욱 게슴츠레하고홀아비처럼 쓸쓸히 보인다​다사다난이란 단어를 꼬깃꼬깃가슴속에 접어놓고아수라장 같은별종들의 모습을 목격도 하고작고 굵은 사건 사고의 연속을앵글에 잡아두기도 하며허기처럼 길고 소가죽처럼 질긴시간을 잘 견디어 왔다​애환이 많은 시간일수록보내기가 서운한 것일까아니면 익숙했던 환경을쉬이 버리기가 아쉬운 것일까​파르르 떨고 있는 우수에 찬 달력 한 장​거미처럼 벽에 바짝 달라붙은 채병술년에서 정해년으로바통 넘겨 줄 준비하는 12월 초하루​ 2024. 12. 18.
옹이로 살아가는 법 - 오영록 옹이로 살아가는 법 - 오영록  노인이 밭은 기침을 뱉으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얼마나 옹이를 욱여넣었던지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건네는 인사말이 통통 되받아친다 옹이 먹은 재목은 못질해보면 안다 못하나 받아내지 못하고 통통 튄다는 것은속에 옹이가 많다는 말 강하면서도 조금의 충격에도 부러지기 쉽다는 것은그만큼 속으로 비어있다는 말 살면서 옹이를 품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는가만오늘도 하나의 옹이를 욱여넣는다 옹이가 많을수록 못을 받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만차라리 옹이를 가슴속으로 넣어야 하는 나무 노인의 밭은기침에서 송진 냄새가 난다 2024. 12. 18.
12월의 단상 - 구경애 12월의 단상 - 구경애​​저기 벌거벗은 가지 끝에​삶에 지쳐넋 나간 한 사람걸려 있고​숭숭 털 빠진까치가 걸터앉았고​세상 물정 모르는참새는 조잘거리고​지나던 바람은쯧쯧,혀차며 흘겨보는데​추위에 떨던 고양이 한 마리낡은 발톱으로 기지개 편다. 2024. 12. 13.
12월의 기도 - 목필균​​ 12월의 기도 - 목필균​​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여기다 풀어놓습니다.​재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숨이 찹니다.​겨울 바람 앞에도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2024.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