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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

다방에서 대낮에 부는 눈보라를 보았다 - 문태준​

by 해선 잠보 2023. 6. 13.

다방에서 대낮에 부는 눈보라를 보았다 - 문태준

대낮에 이층 다방에 앉아 있는데 창에 느닷없이 눈보라가 불어닥쳤다

내가 살던 동네 어른들의 얘길 빌리자면

환한 대낮에 불어닥치는 눈보라는 혼사가 있는 집 새색시가 머잖아 미칠 거라는 불길한 징조라는데

괜히 나는 궁싯거리며 혀도 한바탕 차보며 눈보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어느 먼 산마루에서부터 이곳까지 불어온 눈보라도 이곳의 공간이 낯선 듯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공중에 하얀 아욱꽃처럼 가련하게 멈칫멈칫 흐드러지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내 의지대로 이곳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대낮에 불어닥치는 눈보라는 머잖아 미칠 것을 알면서 혼사를 치르는 딱한 새색시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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