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556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의 시 - 오세영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 오는 것풀 섭에 산나리초롱꽃이 한창인데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한 번쯤은 녹음에 지쳐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2024. 9. 5. 8월 마중 - 윤보영 8월 마중 - 윤보영 해 돋는 언덕으로 곧 만날 8월을 마중 와 있습니다.무성한 풀잎 냄새보다도 낙엽 느낌이 더 진한 걸 보니 8월이 가까이 와 있나 봅니다.8월에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우겠습니다.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듣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운 사람도 만나겠습니다.느낌 좋은 9월이 미소로 걸어올 수 있게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겠습니다.8월을 마중 나온 내 안에 절로 미소가 이는 걸 보니 떠날 준비 중인 7월도 만족했나 봅니다.애썼다, 내 친구 7월! 사랑한다, 행복한 선물 8월! 2024. 9. 5. 8월의 소망 - 오광수 8월의 소망 - 오광수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반가운 8월엔 소나기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얼굴이 되고 만나면 시원한 대화에 흠뻑 젖어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으랴? 푸름이 하늘까지 차고 넘치는 8월에호젓이 붉은 나무 백일홍 밑에 누우면 바람이 와서 나를 간지럽게 하는가? 아님 꽃잎으로 다가온 여인의 향기인가 붉은 입술의 키스는 얼마나 달콤하랴? 8월엔 꿈이어도 좋다 아리온의 하프 소리를 듣고 찾아온 돌고래같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를 듣고 보고픈 그 님이 백조를 타고 먼먼 밤하늘을 가로질러 찾아왔으면, 2024. 9. 5. 바라춤/환락은 모두 아침이슬과도 같이 덧없어라 - 신석초 바라춤/환락은 모두 아침이슬과도 같이 덧없어라 - 신석초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을티없는 꽃잎으로 살어 여러 했건만내 가슴의 그윽한 수풀 속에솟아오르는 구슬픈 샘물을어이할까나.청산 깊은 절에 울어 끊인종소리는 아마 이슷하여이다.경경(耿耿)히 밝은 달은빈 절을 덧없이 비초이고뒤안 이슥한 꽃가지에잠 못 이루는 두견조차저리 슬피 우는다.아아, 어이 하리, 내 홀로,다만 내 홀로 지닐 즐거운무상한 열반(涅槃)을나는 꿈꾸었노라.그러나 나도 모르는 어지러운 티끌이내 맘의 맑은 거울을 흐리노라.몸은 설워라.허물 많은 사바(娑婆)의 몸이여.현세의 어지러운 번뇌가짐승처럼 내 몸을 물고오오, 형체, 이 아리따움과내 보석 수풀 속에비밀한 뱀이 꿈어리는 형역(形役)의끝없는 갈림길이여.구름으로 잔잔히흐르는 시냇물 .. 2024. 9. 4.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아침 저녁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 2024. 9. 4. 너를 부르마 - 정희성 너를 부르마 - 정희성너를 부르마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내 가장 가까운 곳나와 함께 숨쉬는공기여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쓰러진 너를 일으켜서나는 숨을 쉬고 싶다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이 땅이 나를 버려도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자유여 2024. 9. 4. 플라타너스 - 김현승 플라타너스 - 김현승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플라타너스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플라타너스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먼 길에 올 제,호로 되어 외로울 제,플라타너스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이제 너의 뿌리 깊이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플라타너스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플라타너스너를 맞아줄 검은 훍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는냐?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 2024. 9. 4. 가을 서한 - 나태주 가을 서한 - 나태주1끝내 빈 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종이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2새로 국화잎새 따다 수놓아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저승의 햇살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겨울양식.3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다짐하고 내려오는 등성이에서돌아보니 타닥타닥 영그는 가을꽃씨 몇 옴큼,바람 속에 흩어지는 산 너머 기적소리,4가을은 가고 남은 건 바바리코우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때묻은 와이셔츠 깃가을은 가고 남은 건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내 휘파람 소리첫눈 내리는 날에 켜질 그대 창문의 등불 빛한 초롱. 2024. 9. 4.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의 시 - 문병란9월이 오면해변에선 벌써이별이 시작된다나무들은 모두무성한 여름을 벗고제자리에 돌아와호올로 선다누군가 먼 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기도를 마친 여인처럼고개를 떨군다울타리에 매달려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먼 항구에선벌써 이별이 시작되고준비되지 않은 마음눈물에 젖는다 2024. 9. 2. 용산 가는 길/청파동 1 - 박준 용산 가는 길/청파동 1 - 박준청파동에서 그대는 햇빛만 못하다 나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빛은 적막으로 드나들고 바람도 먼지도 나도 그 길을 따라 걸어 나왔다 청파동에서 한 마장 정도 가면 불에 타 죽은 친구가 살던 집이 나오고 선지를 잘하는 식당이 있고 어린 아가씨가 약을 지어준다는 약방도 하나 있다 그러면 나는 친구를 죽인 사람을 찾아가 패를 좀 부리다 오고 싶기도 하고 잔술을 마실까 하는 마음도 들고 어린 아가씨의 흰 손에 맥이나 한번 잡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 2024. 9. 2. 당신이라는 세상 - 박준 당신이라는 세상 - 박준 술잔에 입도 한번 못 대고 당신이 내 앞에 있다 나는 이 많은 술을 왜 혼자 마셔야 하는지 몰라 한다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실 때면 나는 자식을 잃은 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 없는 목사의 딸을 버리고 삼치 같은 생선을 잘 발라먹지 못하는 친구를 버린다 버리고 나서 생각한다 나를 빈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백이 고맙다고, 청파에는 골목이 많고 골목이 많아 가로등도 많고 가로등이 많아 밤도 많다고, 조선낫 조선무 조선간장 조선대파처럼 조선이 들어가는 이름치고 만만한 것은 하나 없다고, 북방의 굿에는 옷(衣)이 들고 남쪽의 굿에는 노래가 든다고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술이 깬다 그래도 .. 2024. 9. 2. 태백중앙병원 - 박준 태백중앙병원 - 박준태백중앙병원의 환자들은 더 아프게 죽는다 아버지는 죽어서 밤이 되었을 것이다 자정은 선탄(選炭)을 마친 둘째형이 돌아오던 시간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드러내 보이던 형의 누런 이빨 같은 별들이 켜지는 시간이다 2024. 9. 2.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9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