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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글6845

꿈의 길 - 문효치 꿈의 길 - 문효치​저 산골 계류에 거닐기 위해잠을 잔다잠 속으로 난 길 꽃도새 길로 가보기 위해잠을 잔다 우리가 잠들 때밤은 오히려환한 세상 낮이 더 어둡다깜깜하다 2024. 11. 21.
거울은 언제 눈감아 주나 - 정두섭 거울은 언제 눈감아 주나 - 정두섭 경대를 펼쳤지만 로션이 안 보여서로션 위에 매직으로로뇬이라 쓴 할매가로뇬을 찍어 바르고 로션이라 읽을 때 암시랑토 않다더니 로뇬도 바닥나서새로 산 로션 뒤에로뇬이라 써준 딸이로뇬을 로션이라 읽고 팍팍 쓰라 말할 때 2024. 11. 20.
밤의 성분 - 서안나 밤의 성분 - 서안나​ 밤은 어디까지 마음일까요나는 밤을 오래 생각한다무언가에 심취하는 일은 사랑과 같아간 허파 심장 갈비뼈 순서로 아프다​밤에 쓴 메모는 진실일까밤에 쓴 메모를 아침에 지운다밤은 휘발성인가​누군가 밤의 창문을 모두 훔쳐 간다제멋대로 지나가는 것들마저 아름답다약하고 아픈 것들은수분이 많은 영혼을 끌고 다닌다그래서 밤은 설탕 성분이 1:3 많고 고장이 잘 난다​내가 노래를 부르면밤은 프로파간다처럼 모자를 쓰고버려진 개와 고양이와 실패한 공원을 키운다당신과 나와 실패한 것들은왜 모두 밤에 포함되는가공원의 밤은 왜 엔진처럼 시끄러운가​이어폰을 끼면 밤이 밀봉된다유통기한이 길어진다​연결부위가 단단하다 밤은, 가끔 달아난다 2024. 11. 20.
나의 일몰 - 이종원 나의 일몰 - 이종원​오후 여섯 시가 유리창에 사선으로 걸린다 정면으로 응시했던 눈동자가 교신을 통해 바람개비를 접는 순간이다 귀로에 연착륙한 사람들은 여의주를 내어주고 고치로 들어간다 양력이 부족한 나는 네온이 범람하는 강 동쪽으로 바람을 쫓는다 어둠에 기댄 동체가 모자란 하루를 채우려는 것이다 마주치는 시선마다 뿔이 흩어지고 분주한 걸음에도 호출에 닿지 못한 손가락은 전쟁 같은 공습에 하나둘씩 꺾인다 취한 유리 조각에 베어진 날개에서 바람이 새고 욕이 눌어붙은 가슴으로 구멍이 지나간다 시간을 속여 몇 장의 지폐와 바꾸려는 아우성에도 날개는 졸음에 겹다 발기되는 아침은 숙면의 또 다른 이름, 나의 숙면은 호출이 쉬고 있는 동안만 허락될 것이다 호출부호가 멈춰 설 때면 아랫목이 그리워져 귀로에 올라선다 .. 2024. 11. 19.
산책 - 우대식 산책 - 우대식​  바람이 몹시 부는 봄날 들판에서 모자를 뒤집어쓰고 강가를 향해 걸을 때 어떤 음성이 빨간 귓등을 때렸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죄 없는 자가 쳐라, 아아 페시미즘의 절대 아닌가. 죄 많은 자가 먼저 쳐라 했어도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신도 없는 봄날 들판에서 신성이 가득한 체험을 안고 집과 점점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 어린 개들은 신발을 물고 제법 멀리나갔다 돌아오는 저녁이다. 집이 덜컹댄다. 당신에 의한 당신의 위한 당신의 세계에 여전히 별이 뜨고 시인의 입을 빌어 아름답다 말하게 한다,죄 없는 자, 벽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2024. 11. 19.
12월 - 임영조 12월 - 임영조​올 데까지 왔구나막다른 골목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꽁꽁 얼어붙은 천지엔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뒤돌아보지 말자더러는 잊고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사랑이며 증오는이쯤에서 매듭을 짓자​새로운 출발을 위해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이 춥고 긴 여백 위에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2024. 11. 18.
12월 - 이외수 12월 - 이외수​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쓸쓸하라고눈이 내린다​닫혀 있는 거리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종말처럼 날이 저문다​가난한 날에는그리움도 죄가 되나니그대 더욱 목메이라고길이 막힌다​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누군가 흐느끼고 있다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지워지고 있다 2024. 11. 18.
12월 - 임영준 12월 - 임영준​​잊혀질 날들이벌써 그립습니다따뜻한 차 한 잔이자꾸 생각납니다상투적인 인사치레를먼저 건네게 됩니다암담한 터널을 지나야 할우리 모두가대견스러울 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아이들을 꼭 품고 싶습니다또 다른 12월입니다 2024. 11. 15.
12월 - 오세영 12월 - 오세영​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2024. 11. 15.
눈길 - 고은 눈길 -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온 겨울을 떠들고 와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눈 내리는 풍경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바라보노라 온갖 것의보이지 않는 움직임을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내리는 눈 사이로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大地)의 고백(告白)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안에서는 어둠이노라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쌓이는 눈 더미 앞에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2024. 11. 14.
11월 - 최갑수 11월 - 최갑수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오래 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소리내어 읽어본다11월의 짦은 햇빛은뭉툭하게 닳은 시집 모서리그리운 것들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잠시 어룽거리다 사라지고여리고 순진한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머물렀던 자리 11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고는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그 동안의 나는누군가가 덮어두었던 오래된 시집바람도 읽다 만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 이상 그리워할 일도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시집 갈피 사이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오랜만.. 2024. 11. 14.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 안윤주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 안윤주  한 해를 보내며내 곁에 자랑하고픈 친구가 있는지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몇이나 있는지나를 떠나간 친구는 없는지떠났다면 왜, 그가 떠나 갔는지거짓 없는 삶의 이력서를 써보자   새해에는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꾸밈없는 속내를 떨어내어알찬 새해 계획을 세워보자.  건강을 위하여나의 키가 줄었는지 자랐는지몸무게가 늘었는지 줄었는지바지사이즈가 줄었는지 늘었는지흰 머리가 많은지 검은 머리가 많은지따져보는 건강의 이력서를 써보자 냉정한 잣대로 존재가치의 지수를 점검해 보자눈물이 나도 포기하지 말고웃음이 나도 자만하지 말자죽는 날까지 노력을 즐겨야 한다는 말삶의 이력서 끝자리에 꼭 붙여놓고 살자.​ 2024. 11. 13.